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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데이비드 롭슨
- 기자, BBC WorkLife
방금 전 기분이 언짢아지는 일이 있었다고 생각해 보자. 친한 친구가 당신의 생일을 잊었다면? 취업에 실패했다면? 또는 새해 연휴를 끝내고 막 눈을 떴는데,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은 보통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어쩌면 당신은 '이러한 감정은 의미없는 것'이라고 되뇌이며, 이러한 일에 영향받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불현듯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할까?'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처럼 (불쾌한 감정을) 외면하고 자신을 단속하는 성향은 '나쁜 감정을 품는 것은 자신을 실패로 몰아넣는 것'이라는 생각, 즉 '무드 쉐임(mood shame)'일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삶의 밝은 면만 고집하는 사람은 강하거나 용감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이 너무 지나치면, 벌어진 일에 합리적으로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자책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망과 걱정,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을 불편하게 여기고, 피하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 심리학계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감정도 우리에게 유용한 목적의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가치를 알아보고 부정적인 판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다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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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이 글에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부정적 감정은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또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만성적인 감정 장애가 아니다. 치료가 필요하고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있음에도, 이를 기피하고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참기만 하는 것은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우리의 삶에 드리워지는 감정의 먹구름이다. 이러한 일시적 감정들은 우리의 장기적인 안녕에 실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마치 그런 상황이 벌어지리라 생각하고, 이를 최대한 회피하려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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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철학자 일라리아 가스파리가 최근 자신의 저서 '감정의 은밀한 삶(Vita Segreta Delle Emozioni)'에서 말했듯, 감정을 억누르려는 시도는 자신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수치심" 및 "두려움"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는 (감정을 억누르는 대가로 생겨나는) 정서는 우리가 억누르려던 감정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집요하다고 썼다.
"저는 감정이란 게 불안정하거나 불균형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개방적이며 세상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것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스파리의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일련의 과학적 연구도 '무드 쉐임'이 우리의 행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 질문에 '1(절대 아니다/매우 드물게 그렇다)'에서 '7(매우 자주 그렇다/항상 그렇다)'의 척도로 평가해 보자.
- 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 비이성적이거나 부적절한 감정을 가진 내 자신에게 비판적이다.
- 나의 감정 중에는 나쁘거나 부적절한 것이 있고, 이 감정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아이리스 마우스는 1000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질문을 했다. 그 결과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한 사람들이 우울증과 불안 증상을 보이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에게선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와 심리적 행복감도 낮게 나타났다. 대조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쁘다'거나 '부적절하다'고 규정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 사람들은 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경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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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과 나쁜 것을 보는 것
나는 책 '기대 효과(The Expectation Effect)'를 위한 자료 조사를 하다가, '무드 쉐임'이 가져오는 결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의 삶에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작용한다는 사례는 많다. 의학계에서 말하는 고통을 느끼는 방식이나 심지어 생리적 반응이 신체적 증상에 대한 사람들의 의미 부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 예다.
우리의 감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감정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감정과 관련된 경험 및 감정이 우리의 건강에 주는 장기적 영향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보자. 실망감은 불쾌한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감을 느꼈을 때,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감정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기 보다는, 그 감정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감정의 잠재적인 용도를 인정함으로써 나쁜 감정과 관련된 두뇌 및 육체의 반응을 바꿀 수 있다.
이를 위해 심리학 문헌을 살펴보다가, 독일 베를린 막스 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의 연구를 알게 됐다. 당시 연구원들은 참가자들에게 초조함과 분노, 우울함 등 그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감정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기 위해, 그러한 감정의 적절성, 효용성, 그리고 의미라는 세 가지 척도를 평가하게 했다.
실험 결과, 전반적으로 "나쁜" 감정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찾아낸 참가자들은 당뇨나 심혈관 질환 같은 질병의 위험이 낮았다. 심지어 근력(체력의 일반적인 지표로 여겨짐)을 포함한 정신적, 육체적 지표에서도 훨씬 좋은 점수를 나타냈다.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은 실험이 진행된 3주 동안 나쁜 감정을 경험한 횟수와 건강 상태 사이의 연관이 발견되지 않았다.
성장을 위한 연료
그 이후로 나는 감정의 잠재적 이익을 인식하는 것이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증거를 발견했다.
걱정에 대해 생각해 보자. 보통 불안한 감정은 우리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어려운 과제에 대한 성과를 감소시킨다고 알려졌다. 긴장을 푸는 법을 배워야만 시험이나 면접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에너지원으로도 볼 수 있다.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영화 세트장에서 긴장을 다스리기 위해 이 전략을 사용한다. 최근의 과학 연구는 이러한 태도를 갖는다면, 대중 앞 연설이나 어려운 시험 같은 과제를 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태도가 번아웃이나 탈진의 위험까지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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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도 비슷한 기대 효과가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좌절감을 느끼면 쉽게 자제력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노를 새로운 결의의 동력이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요구하는 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한 마음가짐은 협상 같은 업무를 할 때 성과를 좌우할 것이다.
막스 플랑크 연구에서 관찰된 것처럼, 감정에 대한 인식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감정 판단의 생리학적 효과 연구는 몇 가지 설득력 있어 보이는 메커니즘을 가설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인간은 스스로에게 위협을 준다고 생각하는 스트레스 요인이 생긴다면,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이 크게 변동하거나 염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생리학적 변화는 신체가 단기적인 위험에 대비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 신체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나쁜 감정을 부적절하거나, 부끄럽거나, 잠재적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자신을 나약하다고 생각하거나 고립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생리학적으로 악영향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
반면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그 감정의 고유한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그러한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막아줄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삶을 통제한다는 자율성과 권한도 느끼게 해줄 수 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생리적인 반응을 완화해주고 몸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며 더 빨리 회복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종단적 연구가 있다. 2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는 감정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장기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연구는 참가자들에게 정신적 긴장과 불안의 정도,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칠 것이라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높은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연구 기간 내 사망률이 그 영향을 덜 부정적으로 예상하는 이들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론은 소득, 교육, 신체활동, 흡연과 같은 많은 다른 생활 요소를 통제해 나온 것이다. 물론 인과관계를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러한 발견은 약간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연구의 발견이 감정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감정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기 연구와도 전반적으로 비슷한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회색 그림자
한 해가 시작되는 이 무렵은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실천에 옮겨볼 만한 적기다. 북반구의 춥고 습한 날씨와 연말연시 휴가에서 일터로의 복귀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중 일부는 더 나은 삶을 갈망하면서 지루함과 좌절감, 슬픔을 만들어내는 '1월의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럴 때 자신에게 가혹한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그것에 기대어서 그 상태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자기 관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감정 자체에 저항하지 않고, 그 감정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인생의 중요한 변화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때때로 우리는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기를 겪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감정이란 흑도 백도 아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많은 경우 중립적이다. 그래서 감정의 뉘앙스에 주목한다면, 인생의 폭풍을 이겨내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롭슨은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로 '지능의 함정' 등을 펴냈다.